2005년 09월 20일
문법 + 콤플렉스 이론 + 시스템 - 예전 에세이
문법, 뉴론, 패턴, 그리고 콤플렉스 이론
Ubiquity (James Buchanan) 의 책에 보면 지진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큰 지진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은 과학이 많이 발달되었다는 지금도 여전하다. 기상예고는 가능한데, 왜 지진은 예측할 수 없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의 공상과학적인 설명이 들어간다. 하나는 예정론이고, 또 하나는 콤플렉스 이론이다. 내가 공을 손에 들고 있다고 하자. 그 공을 들고 있는 손의 근육 하나 하나, 세포 하나 하나의 움직임까지 알 수 있고, 불고 있는 바람의 방향과, 던질 것을 결정할 뇌의 화학 물질 구조까지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 모든 변수와 객체를 프로그램화 할 수 있다면, 내가 공을 어디로 던질지, 그리고 어떻게 공이 날아갈지를 정확하게 예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래를 볼 수 없는 것은 지금 현재 수억 개의 변수를 다 보고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없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성립된다. 내가 오초 후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오초 전에 지금 현재 상태를 예측할 수 있었다는 것이 되고, 그렇다면 일 년 전에 정확한 변수와 객체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면 지금 현재 키보드를 치고 있는 내 모습을 예측할 수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우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이 예정되어 있다고 말을 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설정에 기초한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가 아주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수많은 변수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며 여러 가지 패턴과 객체를 만들어 낸다는 콤플렉스 이론과 세상의 수많은 시스템에는 아주 간단한 패턴이 있음을 보여주는 power-law 가 큰 지진을 설명한다.
감자를 꽁꽁 얼린 후에 벽에다 집어던져 조각조각 난 것을 조사하는 물리학자들이 있다. (그렇다! 이러고도 연구비로 돈을 받는다!) 조각수와 조각 크기를 가지고 그래프를 그리면, 지름 1센티미터의 조각이 36개가 있을 경우 지름 2센티미터의 조각은 6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사이즈를 두 배로 늘린다면 (1-2센티미터) 결과는 1/6 이 된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 연구결과는 지진과 직접 연결된다. 지진이 어떻게 일어날지는 예측을 할 수 없지만 (변수가 너무나도 많으므로) 지금까지 기록된 지진을 다 세어보고, Richter 스케일로 그래프를 그리면 꽁꽁 얼린 감자를 벽에다 던진 것과 같은 반비례 그래프가 그려진다. 단지 gradient 가 틀릴뿐이다 (power-law 그래프 패턴). 그러므로 큰 지진이 일어나는 이유는, 작은 지진이 일어나는 이유와 같다는 말이 된다. 큰 지진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므로 틀려 보일 뿐이라는 말이 된다.
Desmond Morris 의 Human Zoo 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특이한 생물이라고 한다. 인간 아이의 머리가 너무 커서 그렇다는데, 그렇다면 진화중 혼자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약점보다 머리가 큰 (뇌가 더 발달한) 아이를 낳는 장점이 더 컸다고 유추할 수 있다.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인간은 이십년에 가까운 세월을 여러 가지 교육을 받으며 자라고, 최소한 그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사회에서 살아나가면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 정도로 발달이 된다. 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회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 만큼의 패턴을 배워야 하는 것도 빼놓을 수가 없다. 인간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아이들은 의미와 문법을 배운다.
의미란 것은 무엇일까. How Brains Make up their Minds (Walter J. Freeman) 은 세상을 그대로 경험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시각적, 청각적 자극이 있기에, 인간은 그 수많은 자극 중에서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패턴에 비교 분석하여 단순화하고, 그렇게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한다고 말한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에 모두 다 반응할 수 없으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취하고, 나머지는 버린다. 여기서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이미 뉴론에 만들어진 의미에 의존한다. “위험” 이라는 의미를 알고 있다면, 눈앞에 보이는 것이 위험한가 하지 않은가를 결정할 수 있다. 물론, 내가 만들어낸 “위험”이라는 의미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위험”과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뉴론 자체는 그와 비슷할지라도 그 많은 뉴론에 만들어진 “위험”이라는 의미 시스템이 그의 뉴론 “위험” 의미 시스템과 동일할 가능성은 제로이다. 그렇지만 똑같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비슷하고, 제한된 의사소통에서 그 정도로도 정상적인 사회를 이루고 사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기에 의미 시스템은 유용하다고 본다.
“시스템”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사용한 것은, Freeman 이 의미를 (meanings - emerge from the whole of the synaptic connections among the neurons of the neuropil) 작은 dynamic state, consistent system 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있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와 연결하기 위해서이다 ^^
세상을 둘러보며 사람들은 자신의 뇌 속의 의미로 이해하려 애쓴다.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건물” 이며, 그 “건물”은 아주 “크다.” “건물” 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다른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 건물들은 보통 “단단” 하며, 여러 “층”이 있고, “전기”가 배선되어 있을 것이다. 컴퓨터로 무언가를 인식하게 하려면 인식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어야 하듯이 (차의 번호판을 보고 번호를 읽는, 간단해 보이는 그런 인식 시스템도 사실은 상당히 복잡하다.)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부딪혔을 때 인간은 무언가 패턴을 집어내려고 한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설명할 수가 없을 때 뉴턴은 중력이라는 시스템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시스템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은 아인슈타인의 시스템으로 조금 더 보완이 되었다고 과학 역사는 전한다. 수학이라는 시스템과 과학이라는 시스템으로 우리는 세상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게도 되었다. 그렇지만 뉴턴의 시스템과 인간의 의미 시스템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뉴턴의 시스템은 자연세계의 법칙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 그러므로 개개인마다 다른 의미 시스템에 비교 될 수가 없다.
엉망으로 흩어져 보이는 뉴론에 사실은 우리가 그리도 소중히 여기는 의미가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듯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것 같아도 패턴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벽에 얼린 감자를 던지는 것이 그렇고, 불린 네트워크의 state cycle 이 그렇다. 사고가 나서 차가 꽉 막혔을 때, 사고 난 차량은 치워도 차가 밀린 것은 사고 현장에서 반대방향으로 밀려가듯이 (sound wave 와 비슷함), 인간들의 어설픈 패턴 매칭이 아닌 완전한 시스템이 나타날 수가 있다. Roger Lewin 의 Complexity 는 들어 있는 기본 요소의 루트만큼의 시스템 (state cycle) 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100,000 의 기본 요소가 있다면 370 개 정도의 state cycle 이 나타날 수 가 있고 (or attractors) 그것은 254 기본 세포 타입과 그리 많이 다르지 않다.
인간의 언어에는 어디에나 있는 문법도 뉴론의 의미 덩어리, 혹은 패턴, 혹은 시스템의 산물이 아닐까. 그저 이상한 소리로만 들리는 외국 언어도 분석해보면 확실한 문법이 있고,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싶은 기본적인 문법의 법칙으로 인간은 수없은 변형을 만들어 내어 의사소통을 한다 (Words and Rules, Steven Pinker). 베이스 4개의 DNA 로 끝없이 많은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듯이, 간단한 법칙 몇가지로 셀 수 없이 많은 표현 방식이 가능하다.
자, 여기서 결론은 (서론 무지하게 길었다 ㅠㅠ), 문법이라는 것은 자연 세계의 법칙에 가까운 것일까, 아니면 그저 우리 뇌 안에 있는 개인만의 의미 시스템일까. 아이들은 어떤 사회에 태어나도 각각 틀린 문법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을 볼 때, 기본 문법 시스템은 쉽게 변형될 수 있는 생물학적 객체라고 생각된다. 언어 자체가 의미로 채워져 있으니 절대적인 정의를 내릴 수가 없고, 언어 자체도 하나의 독립된 시스템이다 보니 생물체처럼 변해간다 - 고장마다 조금씩 틀려지고, 나라마다 틀려진다. 그리고 이런 작은 변화 하나 하나는 크고 작은 지진이 일어나듯이 예측하기도 힘들고,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개개인, 혹은 그 개인들이 이루는 시스템인 고장, 나라 등에 의해서 변화되는 언어와 문법을 (기본 문법 시스템은 배우는 언어에 따라서 적응해가니까..) 자연의 법칙에 비교하는 것은 그래서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어진다.
미국의 Yellowstone 이라는 숲에서 1980 년대 후반까지는 불을 막으려 급급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작은 산불이 나도 곧 대응에 나서곤 하던 그들은 1980년도 후반에 (87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엄청난 불에 몇백만 에이커가 불타오르자 망연자실해버렸다. 그대로 두었다면 지진의 경우처럼 작은 불은 더 자주 일어났을 것이고, 큰 불은 덜 자주 일어났을 것인데, 작은 불을 막다 보니 숲이라는 시스템을 더 critical state 로 만들었던 것이다. 소소한 불이 나지 않다보니 잘 타오르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은 쌓여갔고, 한번 타오르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는 큰 불이 되어버렸다. 물리학자들이 자주 하는 모래붓기 게임처럼, 마지막 한알이 왜 모래 더미를 무너져 내리게 했는지 설명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세계 제 1차 세계대전이, 만약 오스트리아의 Ferdinand 가 죽지 않았더라면 하는 것이 그리 큰 의미가 없듯이 - 그때의 유럽 정세를 보면 어떻게 전쟁이 나도 났을 거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Critical state 였으니, 이번 모래알이 아니면 다음 모래알로 무너져 내렸을 거라는 의견) 우리가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시스템이 아닌, 우리의 의미 시스템과 문법 시스템에서 탄생해, 인간들 사회에서 계속 변화해가는 언어. 지난 백년간 영어는 아주 빠른 속도로 변화해왔다. 차라리 변화는 변화하는 대로 두는 것이, 프랑스인들처럼 어떻게든지 언어의 변화를 막으려고 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 아닐까 (영어의 경우 이미 몇 명이 막을 수 있는 상태는 지났지만). 죽어라고 막는 동안 책으로만 남은 “올바른 언어 사용”은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언어 시스템과 동떨어져,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릴 수가 있으니 말이다. 백 오십년 전에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한정되어 있으니 언어의 관리가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언어는 인터넷라인과 뉴스 라인, 이메일을 통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생물체가 진화하듯이 바뀌고 있다. 특정한 지역 (예: 영국)의 의미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의미를 선택하면서, 어려운 법칙보다는 다른 문법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 선택할 “틀린” 문법을 선택하면서, 정확한 표현보다는 쉽게 들리는 표현을 선택해가면서 언어는 모습을 바꾸어가고 있다. 하나 두개의 작은 불을 끄려 노력해도 그리 큰 효과는 볼 수 없다 믿어진다. 어차피 우리 뇌 속 안의 그리 확실하지 않은 문법 구조 자체가 언어를 바꾸는데 일조 하고 있을테니까....
Ubiquity (James Buchanan) 의 책에 보면 지진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가 있다. 큰 지진을 예측할 수 없는 것은 과학이 많이 발달되었다는 지금도 여전하다. 기상예고는 가능한데, 왜 지진은 예측할 수 없을까.
여기에는 두 가지의 공상과학적인 설명이 들어간다. 하나는 예정론이고, 또 하나는 콤플렉스 이론이다. 내가 공을 손에 들고 있다고 하자. 그 공을 들고 있는 손의 근육 하나 하나, 세포 하나 하나의 움직임까지 알 수 있고, 불고 있는 바람의 방향과, 던질 것을 결정할 뇌의 화학 물질 구조까지 알고 있다면, 그리고 그 모든 변수와 객체를 프로그램화 할 수 있다면, 내가 공을 어디로 던질지, 그리고 어떻게 공이 날아갈지를 정확하게 예측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우리가 미래를 볼 수 없는 것은 지금 현재 수억 개의 변수를 다 보고 시뮬레이션을 돌릴 수 없기 때문이라는 가설이 성립된다. 내가 오초 후의 미래를 볼 수 있다는 것은, 오초 전에 지금 현재 상태를 예측할 수 있었다는 것이 되고, 그렇다면 일 년 전에 정확한 변수와 객체로 시뮬레이션을 돌렸다면 지금 현재 키보드를 치고 있는 내 모습을 예측할 수 있었다는 말이 된다. 그렇다면 우주의 시작부터 지금까지의 모습이 예정되어 있다고 말을 해도 되는 것이 아닐까. (이 설정에 기초한 공상과학 소설이나 영화가 아주 많은 것으로 알고 있다.) 수많은 변수들이 한꺼번에 움직이며 여러 가지 패턴과 객체를 만들어 낸다는 콤플렉스 이론과 세상의 수많은 시스템에는 아주 간단한 패턴이 있음을 보여주는 power-law 가 큰 지진을 설명한다.
감자를 꽁꽁 얼린 후에 벽에다 집어던져 조각조각 난 것을 조사하는 물리학자들이 있다. (그렇다! 이러고도 연구비로 돈을 받는다!) 조각수와 조각 크기를 가지고 그래프를 그리면, 지름 1센티미터의 조각이 36개가 있을 경우 지름 2센티미터의 조각은 6개가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므로 사이즈를 두 배로 늘린다면 (1-2센티미터) 결과는 1/6 이 된다는 것이다. 재미있게도 이 연구결과는 지진과 직접 연결된다. 지진이 어떻게 일어날지는 예측을 할 수 없지만 (변수가 너무나도 많으므로) 지금까지 기록된 지진을 다 세어보고, Richter 스케일로 그래프를 그리면 꽁꽁 얼린 감자를 벽에다 던진 것과 같은 반비례 그래프가 그려진다. 단지 gradient 가 틀릴뿐이다 (power-law 그래프 패턴). 그러므로 큰 지진이 일어나는 이유는, 작은 지진이 일어나는 이유와 같다는 말이 된다. 큰 지진은 우리에게 많은 영향을 끼치므로 틀려 보일 뿐이라는 말이 된다.
Desmond Morris 의 Human Zoo 에 따르면 인간은 다른 누군가가 도와주어야 아이를 낳을 수 있는 특이한 생물이라고 한다. 인간 아이의 머리가 너무 커서 그렇다는데, 그렇다면 진화중 혼자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약점보다 머리가 큰 (뇌가 더 발달한) 아이를 낳는 장점이 더 컸다고 유추할 수 있다. 다른 동물들과 다르게 인간은 이십년에 가까운 세월을 여러 가지 교육을 받으며 자라고, 최소한 그 정도의 시간이 흘러야 사회에서 살아나가면서 아이를 낳을 수 있을 정도로 발달이 된다. 이에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지만, 사회에서 살아나갈 수 있을 만큼의 패턴을 배워야 하는 것도 빼놓을 수가 없다. 인간 사회에서 꼭 필요한 의사소통을 위해서 아이들은 의미와 문법을 배운다.
의미란 것은 무엇일까. How Brains Make up their Minds (Walter J. Freeman) 은 세상을 그대로 경험하기에는 너무나도 많은 시각적, 청각적 자극이 있기에, 인간은 그 수많은 자극 중에서 자신이 이미 가지고 있는 패턴에 비교 분석하여 단순화하고, 그렇게 정보를 받아들이고 저장한다고 말한다. 보이는 것, 들리는 것, 느껴지는 것에 모두 다 반응할 수 없으니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것은 취하고, 나머지는 버린다. 여기서 중요하다고 판단하는 것은 이미 뉴론에 만들어진 의미에 의존한다. “위험” 이라는 의미를 알고 있다면, 눈앞에 보이는 것이 위험한가 하지 않은가를 결정할 수 있다. 물론, 내가 만들어낸 “위험”이라는 의미는 내 옆에 있는 사람의 “위험”과 똑같지는 않을 것이다. 뉴론 자체는 그와 비슷할지라도 그 많은 뉴론에 만들어진 “위험”이라는 의미 시스템이 그의 뉴론 “위험” 의미 시스템과 동일할 가능성은 제로이다. 그렇지만 똑같지는 않더라도 충분히 비슷하고, 제한된 의사소통에서 그 정도로도 정상적인 사회를 이루고 사는 데에는 큰 문제가 없기에 의미 시스템은 유용하다고 본다.
“시스템”이라는 단어를 일부러 사용한 것은, Freeman 이 의미를 (meanings - emerge from the whole of the synaptic connections among the neurons of the neuropil) 작은 dynamic state, consistent system 이라고 표현한 이유도 있지만, 다음에 이어지는 이야기와 연결하기 위해서이다 ^^
세상을 둘러보며 사람들은 자신의 뇌 속의 의미로 이해하려 애쓴다. 내 앞에 서 있는 것은 “건물” 이며, 그 “건물”은 아주 “크다.” “건물” 이라는 것은 여러 가지 다른 의미와 연결되어 있다. 건물들은 보통 “단단” 하며, 여러 “층”이 있고, “전기”가 배선되어 있을 것이다. 컴퓨터로 무언가를 인식하게 하려면 인식 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 주어야 하듯이 (차의 번호판을 보고 번호를 읽는, 간단해 보이는 그런 인식 시스템도 사실은 상당히 복잡하다.) 무언가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부딪혔을 때 인간은 무언가 패턴을 집어내려고 한다. 사과나무에서 사과가 떨어지는 것을 설명할 수가 없을 때 뉴턴은 중력이라는 시스템으로 설명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그 시스템으로 설명할 수 없는 상황은 아인슈타인의 시스템으로 조금 더 보완이 되었다고 과학 역사는 전한다. 수학이라는 시스템과 과학이라는 시스템으로 우리는 세상을 조금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었고, 삶의 질을 향상할 수 있게도 되었다. 그렇지만 뉴턴의 시스템과 인간의 의미 시스템과는 현저한 차이가 있다. 뉴턴의 시스템은 자연세계의 법칙을 설명하고 예측할 수 있는 시스템, 그러므로 개개인마다 다른 의미 시스템에 비교 될 수가 없다.
엉망으로 흩어져 보이는 뉴론에 사실은 우리가 그리도 소중히 여기는 의미가 차곡차곡 정리되어 있듯이, 아무렇게나 흩어져 있는 것 같아도 패턴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벽에 얼린 감자를 던지는 것이 그렇고, 불린 네트워크의 state cycle 이 그렇다. 사고가 나서 차가 꽉 막혔을 때, 사고 난 차량은 치워도 차가 밀린 것은 사고 현장에서 반대방향으로 밀려가듯이 (sound wave 와 비슷함), 인간들의 어설픈 패턴 매칭이 아닌 완전한 시스템이 나타날 수가 있다. Roger Lewin 의 Complexity 는 들어 있는 기본 요소의 루트만큼의 시스템 (state cycle) 이 나타난다고 한다. 그렇다면 100,000 의 기본 요소가 있다면 370 개 정도의 state cycle 이 나타날 수 가 있고 (or attractors) 그것은 254 기본 세포 타입과 그리 많이 다르지 않다.
인간의 언어에는 어디에나 있는 문법도 뉴론의 의미 덩어리, 혹은 패턴, 혹은 시스템의 산물이 아닐까. 그저 이상한 소리로만 들리는 외국 언어도 분석해보면 확실한 문법이 있고, 어떻게 보면 간단하다 싶은 기본적인 문법의 법칙으로 인간은 수없은 변형을 만들어 내어 의사소통을 한다 (Words and Rules, Steven Pinker). 베이스 4개의 DNA 로 끝없이 많은 패턴을 만들어낼 수 있듯이, 간단한 법칙 몇가지로 셀 수 없이 많은 표현 방식이 가능하다.
자, 여기서 결론은 (서론 무지하게 길었다 ㅠㅠ), 문법이라는 것은 자연 세계의 법칙에 가까운 것일까, 아니면 그저 우리 뇌 안에 있는 개인만의 의미 시스템일까. 아이들은 어떤 사회에 태어나도 각각 틀린 문법에 적응할 수 있는 것을 볼 때, 기본 문법 시스템은 쉽게 변형될 수 있는 생물학적 객체라고 생각된다. 언어 자체가 의미로 채워져 있으니 절대적인 정의를 내릴 수가 없고, 언어 자체도 하나의 독립된 시스템이다 보니 생물체처럼 변해간다 - 고장마다 조금씩 틀려지고, 나라마다 틀려진다. 그리고 이런 작은 변화 하나 하나는 크고 작은 지진이 일어나듯이 예측하기도 힘들고, 막는 것도 불가능하다고 본다. 개개인, 혹은 그 개인들이 이루는 시스템인 고장, 나라 등에 의해서 변화되는 언어와 문법을 (기본 문법 시스템은 배우는 언어에 따라서 적응해가니까..) 자연의 법칙에 비교하는 것은 그래서 맞지 않는다고 생각되어진다.
미국의 Yellowstone 이라는 숲에서 1980 년대 후반까지는 불을 막으려 급급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작은 산불이 나도 곧 대응에 나서곤 하던 그들은 1980년도 후반에 (87년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엄청난 불에 몇백만 에이커가 불타오르자 망연자실해버렸다. 그대로 두었다면 지진의 경우처럼 작은 불은 더 자주 일어났을 것이고, 큰 불은 덜 자주 일어났을 것인데, 작은 불을 막다 보니 숲이라는 시스템을 더 critical state 로 만들었던 것이다. 소소한 불이 나지 않다보니 잘 타오르는 나뭇가지와 나뭇잎은 쌓여갔고, 한번 타오르기 시작하자 걷잡을 수 없는 큰 불이 되어버렸다. 물리학자들이 자주 하는 모래붓기 게임처럼, 마지막 한알이 왜 모래 더미를 무너져 내리게 했는지 설명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세계 제 1차 세계대전이, 만약 오스트리아의 Ferdinand 가 죽지 않았더라면 하는 것이 그리 큰 의미가 없듯이 - 그때의 유럽 정세를 보면 어떻게 전쟁이 나도 났을 거라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Critical state 였으니, 이번 모래알이 아니면 다음 모래알로 무너져 내렸을 거라는 의견) 우리가 자연 현상을 설명하기 위한 시스템이 아닌, 우리의 의미 시스템과 문법 시스템에서 탄생해, 인간들 사회에서 계속 변화해가는 언어. 지난 백년간 영어는 아주 빠른 속도로 변화해왔다. 차라리 변화는 변화하는 대로 두는 것이, 프랑스인들처럼 어떻게든지 언어의 변화를 막으려고 하는 것보다 나은 방법이 아닐까 (영어의 경우 이미 몇 명이 막을 수 있는 상태는 지났지만). 죽어라고 막는 동안 책으로만 남은 “올바른 언어 사용”은 살아 움직이는 사람들의 언어 시스템과 동떨어져, 소리 없이 무너져 내릴 수가 있으니 말이다. 백 오십년 전에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한정되어 있으니 언어의 관리가 가능했을지 모른다. 그렇지만 지금 언어는 인터넷라인과 뉴스 라인, 이메일을 통해 쉴 새 없이 움직이며 생물체가 진화하듯이 바뀌고 있다. 특정한 지역 (예: 영국)의 의미보다는, 더 많은 사람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의미를 선택하면서, 어려운 법칙보다는 다른 문법 시스템에 익숙해져 있는 사람들이 선택할 “틀린” 문법을 선택하면서, 정확한 표현보다는 쉽게 들리는 표현을 선택해가면서 언어는 모습을 바꾸어가고 있다. 하나 두개의 작은 불을 끄려 노력해도 그리 큰 효과는 볼 수 없다 믿어진다. 어차피 우리 뇌 속 안의 그리 확실하지 않은 문법 구조 자체가 언어를 바꾸는데 일조 하고 있을테니까....
# by | 2005/09/20 00:52 | Essays | 트랙백(1) | 덧글(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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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 개멍의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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