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방식과 근성


이번 달에 신랑님이랑 알바를 좀 했더랬다. 언제나 광고계에 관심이 있었던 신랑님과 양파는 그럭저럭 큰 광고계에서 일하는 지인으로부터 웹 알바 하지 않겠냐는 제안을 받았었다. 그래서 한 150 만원 부르고 일 시작했음. 광고 회사한테는 우리 둘다 day job 있으니까 저녁에만 일해준다고 명시를 했다.

사실 일은 별로 없었다. 인터넷 마케팅의 일환으로 설문 조사 하는 거였는데 백엔드 엔진은 이틀만에 신랑님 다 만드셨다. 그냥 세션 관리 하는 거랑 데타베이스 연결, 그리고 질문 만들어 내는 스크립트가 다였다고. 프론트 엔드, 그러니까 사이트 디자인 및 html, javascript 는 그 쪽에서 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빨랑 기획안(? spec) 달라고 해도 미루고미루고 미루더니 live 며칠 전부터 전화가 마구마구 오기 시작했다. 이거 고쳐줘요, 저거 해줘요, 이거 디쟌 좀 바꿔줘요 등등. 백엔드 부분 문제가 아니었다. 원래 안 하기로 얘기 끝난 일을 시키니까 신랑님 신경질이 슬슬 나기 시작했다. 게다가 지인이 하는 말이 고객한텐 계약프로그래머 (==> 우리) 때문에 늦어졌다고 핑계를 댔다고 하네. 이렇게 며칠이 계속 되면서 신랑님 짜증 이빠이 난 상태였다.

남아공에서 꽤 큰 회사의 재정보고서 웹 사이트를 조금만 고쳐달라고 해서 한 40만원에 해 주겠다고 했었다. 세 페이지, 포토샵 디자인 그대로 만들어 달라는 거였다. 그래서 만들어 줬는데 잘했다, 됐다 하더니 그것 역시 마감일이 되니까 마구마구 고쳐달라는 요청이 쇄도했다. 이건 내가 맡았던 부분이라 조금씩 조금씩 했는데 신랑이 아닌 내가 맡아서 한다는 걸 알게 된 여과장은 이제 나한테 이멜을 바로 보내기 시작했다. 나야 뭐 모르니까 그냥 하라는대로 했다. 근무시간이긴 하지만 원래 우리 회사 많이 논다니까 -_; 그걸 발견한 신랑님. 화산분출하듯 화 폭발했다. "어디 감히 날 안 통하고 바로 너한테 이멜 보내서, 근무시간에 일 시켜?" 하면서 줄리아란 그 여과장이랑 한바탕 했단다. "I fire you as a client" 였다던가 -_-; (-> '너같은 고객 필요 없어' 정도)

그걸 보고 생각한 건데.

난 시키면 곧잘 한다. 좀 많이 시켜도 한다. 안 시키면 불안할 때도 있다. 이건 좀 한국식인 거 같다. 마감 전에 마구마구 고쳐달라고 부탁해도 일이 원체 그러려니 한다.

신랑님. 일 시작 전에 먼저 계약서 쓴다. 계약서 대로 해주고, 그 보다 조금 더 해줄 수도 있지만 만약 상대방이 계약서 외로 해주는 것을 아주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면 졸라 까칠해진다. '약속 안 지키는 것들'하고는 상대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물론 계약서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땍땍거리는 건 아니다. 사람 일인 만큼 조금씩 벗어날 수 있고, 웬만하면 편의 봐준다는 입장이지만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고 마구 부려먹으려는 순간부터 신랑님은 고집불통 소새끼가 된다고나 할까.

그런 거 보면 난 좀 마음 약한 편인건지, 한국 범생이 병이 있는 건지, '너무너무 급해요 죄송하지만 해 주세요' 라고 하면 맘 약해져서 해주는 편이다. 밤 늦게 일해야 한다고 해도 뭐 매일매일 그러지 않는 이상 마감 전 며칠 정도는 융통성 있게 좀 봐줄 수 있는데 신랑님한테는 "해줄 수 있으면 좀 해준다"는 개념은 없다. 성격 차이인가? 한국 고용주는 근성 없다고 욕하지 않을까? (글케 말하면 신랑님이 답할 말은 - 니 맘대로 시켜먹을 수 있는게 근성이면 그딴 거 필요 없어)

신랑님이 까칠한 건지, 내가 멍청한건지 ;ㅁ;


뭐, 결론은 이번 달 용돈으로 2백 정도 벌었다는 거. 그리고 글케 딱딱거렸는데도 줄리아씨는 일 더 해달라고 전화왔다는 거. ㅡㅡa

덧: 신랑님 슬로건은 Don't make your lack of preparation my emergency. 당신의 준비부족은 나의 비상사태가 아니다.

by 양파 | 2008/02/27 17:16 | work - IT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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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Sikuru at 2008/02/27 17:24
오오. 저도 신랑님 같은 사상입니다...만, 회사에서 시키는 야근은 투정도 안하고 잘도 합니... orz
물론 계약서 쥐고 일해야 하는 상태에선 저도 까칠까칠해서 상대방이 그닥 좋아하지 않더군요. (므하하하~)
Commented by 比良坂初音 at 2008/02/27 17:55
..........신랑님 슬로건이 무지 개념 슬로건이로군요^_^
Commented at 2008/02/27 17:58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oO천랑Oo at 2008/02/27 20:00
아마도 우리나라는 "까라면 까지 왜 잔말이 많아.." 뭐 이런 생각일겁니다. (군대식 사고라면 사고일까요?)
Commented at 2008/02/27 20:02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lakie at 2008/02/27 20:36
월급쟁이니까 계약서는 아니지만..
업무 계획표대로 일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제발..
Commented by 오후네시 at 2008/02/27 22:08
저 슬로건 좀 빌려가도 될까요? 참 맘에 드는군요.
Commented by 프로리 at 2008/02/27 22:33
와~ 알바 제대로 하셨네요..ㅋㅋ
Commented by 소마 at 2008/02/28 00:13
저도 양파님같은 타입인데 그걸 두고 두고 쌓아놓고 있다는게 다르군요.
그리고 신랑님 마지막 말 맘에 드는데요.^^
이걸로 배쨀 이유가 하나 늘었다능;; 호호;;
Commented by 시퍼렁어 at 2008/02/28 04:17
저는 신랑님 타입이라 아직 무직인듯..... OTL 이거 좋은건지 나쁜건지...
Commented at 2008/02/28 07:06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마펴도 at 2008/02/28 08:52
신랑님처럼 하는게 맞지요..특히나 외국에서는요..
하지만..한국에서는 양파님의 정서가 아직도 더 통할걸요..그러나 점점 변해가고 있답니다..^^
Commented by 양파 at 2008/02/28 17:43
Sikiru// 에이, 야근 잘 하시면 머야;;
하츠네// 좀 싸가지 없죠 ㅎㅎ
비밀글// 아! 갑/을이라고 하는 거 봤었는데 누가 갑이고 누가 을인지 잘 몰라서 안 썼다는;;
천랑// 맞아요! 까라면 까 ㅋㅋ
비밀글// 음. 신랑님 의외로 마음은 약한 편이라서 그렇게까진 안했을지 몰라도, 만약 그 아이들이 기다렸다고 불평했다면 딱 똑같이 반응 할 거에요;; 그리고 밖에서 기다리는 건 솔직히 이해 안 가네요 -_-; 서 있어야 해서 다리 아프다면 몰라도.
해외에서 홈스테이 하셨나봐요?
lakie// 음. 단체로 배째기가 좀 필요한...
오후네시// 빌려가셔도 :)
프로리// 용돈으로는 괜찮죠 :)
소마// ㅋㅋㅋ 배 째세요~
시퍼렁어// 글쎄요 ㅎㅎ
비밀글// 그런데 천성이 안 그러니까 좀 힘들어요 ㅡㅜ
마펴도// 신랑님처럼 하는 거 맞는 거 같다가도 제가 일 시키는 입장이면 좀 얄미울 거 같은;;;
Commented by LaJune at 2008/02/28 20:16
신랑님 슬로건이 참 멋지십니다만 한국은 양파님 말마따나 알아서 기는 것이 워낙 세뇌된 편이라서......
게다가 이젠 국민들아 희생봉사 열심히 해라 무보수로 해라... 하는 분이 대두령이 되신 상태인지라. on_
Commented by 마르슬랭 at 2008/02/28 23:15
아뭐.. 한국 클라이언트들 보다는 낫지.. 나 전 회사에서 메인 화면 디자인만 열번 넘게 빠꾸 시켜서 디자이너 잠수 탔었잖아; 개발팀은 일 시작도 못 하고.. 뭐 그걸 당연하게 생각하는 고객들도 있는데 그쯤이야..ㅡ.ㅜ
Commented by 양파 at 2008/02/29 23:20
LaJune// ㅜ.ㅜ 국민들아 희생하셈인가요;
마르슬랭// 맞아맞아 생각나 ㅎㅎ
Commented at 2008/03/01 00:2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at 2008/03/01 11:03
비공개 덧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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