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로움의 주기


난 태어나기를 좀 망가져서 태어났는지 모른다. 아니면 혼자였던 적이 없어서 절실히 느끼지 못했거나.

친구들과의 관계를 잘 지속 못한다. 그들이 나에게 관심을 끊는다...고 하면 그냥 자학모드로 들어가면 되겠으나 사실은 내가 귀찮아한다. 즐겁게 놀고 나서도 집에 돌아가고 싶어한다. 하루에 친구 한 명 이상 보는 건 부담스럽다. 그나마 일주일에 몇 번 정도 사람들과 어울리면 진이 다 빠진다. 전화 받는 것도 싫고, 사실 난 다른 이에게 그리 관심이 없는 듯 하다. 장애이다.

누군가가 나를 알아주었으면 하는 마음보다는 제발 좀 내 얼굴 잊어버렸으면 하는 피해의식이 더 크고 (...이건 동양사람이 별로 없는 곳에서 자라서?), 누가 날 챙겨주면 그것 참 부담되기 짝이 없으며, 한 번 친구를 보고 나면 아, 재미있다, 자주 보자란 생각보다는 아, 이제 한 몇 주/ 몇 달 동안 안 봐도 되겠구나 하는 안도감이 슬며시 든다. 싫어하는 건 절대로 아닌데, 그냥 그렇다.

바이오리듬 비슷하게 주기가 있다. 사람이 그리울 때가 있고, 안 그럴 때가 있다. 한참 그립고 말하고 싶고 나누고 싶을 때엔 활동도 왕성하고 무려 내가 직접 전화를 할 때도 있다. 부모님한테도 이럴 때 전화 한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곧 진이 빠지고, 어짜피 그런 건 다 시간 낭비라 느낀다. 그래서 어쩌라고. 내 얘기 몇 번 반복해서, 그래서 어쩌라고. 난 똑같은 얘기 하는 거 재미없는데. 쟤도 별 할 얘기 없잖아. 이렇게 그냥 앉아서 다른 사람한테 했던 얘기 반복하는 거 싫어. 어색해. 할 말 없이 앉아 있는 거 시간 낭비야.

그딴 식으로 비뚤어질 거 알기 때문에 (...) 사람 그리울 때에도 아는 사람을 잘 늘이지 않는다. 지금 아는 사람도 감당 못하기 때문에, 새로운 사람 만나면 좋고 즐거우나 싸가지 없게 샥 사라져서 상대방 황당하게 할 거라면 아예 벌이지 않는 편이 낫다고 생각해서이다. (글구 사실 예뻐해주는 사람도 없다 ㅠㅠ)

나 자신과 시간 보내는 걸 좋아한다면 그것도 사실 뻥이다. 사람이 그립지 않을 뿐이지, 나가기 귀찮을 뿐이지, 내면과의 대화를 너무나도 즐긴다면 그게 미친년이지. (혼잣말하고 유령이 대답해주고 놀면 그런 호러가) 그저 혼자 노는 쪽이, 나가는 쪽보다 덜 귀찮을 뿐. 그리고 인터넷이고 친구고 다 끊으면 뭔가 뿌듯한 느낌이 든다 이거지. 귀중한 시간 얻은 거 같다는 싸가지 없음이 왕성할 때라면 특히나 더.

며칠 내내 일찍 집에 귀가, 책 읽다가 일찍 자고, 아침 다섯시 반이면 똥그랗게 눈 떠서 (...아무리 아침형 인간인 양파지만 좀 오버인듯 -_;; 어째 새벽 다섯시 반에 깨면 더 못 자냐;; 노인네도 아니고) 딩굴딩굴 하다 운동하러 가고, 집에 오면 여덟시. 신랑님 일어나시려면 멀었다. 책 좀 더 읽다가 출근하고, 직장에서도 이것 저것 읽다가 퇴근, 뭐 그렇다.

뭐가 더 병적일까. 평균치보다는 확실히 떨어지는, 다른 사람들과의 유대감. 사회성 결여. 게으름. 혹은 책임지지 못할 관계 (누가 보면 바람이라도 피는 줄 알겠군 -_;; 그냥 친구도 부담스럽다니까) 회피. 블로그도 결국은 그거다. 왕성하게 막 하다 보면, 앗, 계속 업데 해야 하는 거야? 안 돼. 나 여기 너무 시간 붓고 있어. 끊고 보자. 자, 끊고 보니까 그리 어렵지 않지? 그렇게 끊는 거야. 좀 외로워? 그래도 노력해야 하는 것보다 덜 귀찮잖아.

몰라. 우선은 아침형 인간에 다요트에 운동까지 챙겨서 하시는, 전혀 병적이지 않고 건강한 정상 직장인이라고 해 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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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파 | 2007/09/26 15:54 | Misc | 트랙백 | 덧글(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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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마르슬랭 at 2007/09/26 16:58
마지막 줄, 맞는 말인 것 같은데.. 아침형 인간에 성공적인 다요트에 운동까지 챙겨서 하는 아주아주 모범적인 직장인은 아닐런지..^^
Commented by 比良坂初音 at 2007/09/26 19:52
.....왠지--; 양파님이 이런 류의 얘기를 하실 때마다 저는 희한하게 동질감을 느낀단 말이지요;;;
무척이나 흡사한 점이 많달까-;;; 혹시 주변의 지인들과 연락 할때도 통화를 짧게짧게 용건만 딱 말하시고 끊어버리는 타입이신가요?;;
Commented by wenzday at 2007/09/26 20:51
좋아요 저는 그런 거. 요즘은 부담없는 인간관계가 제일 절실해요. 양파님 글 읽고 가면 왠지 마음이 단단해지고 편해지는 그런 게 있어요. ^^
Commented at 2007/09/27 14:09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양파 at 2007/09/27 16:20
마르슬랭// 뭐 먹고 싶어서 이러시나...
하츠네// ㅋㅋㅋ 저 전화 그렇게 하는 편이에요;;
wenzday// 그런데 제가 그리워질 때도 있으니까 문제다 이거죠 ㅡㅜ 아예 안 그리우면 몰라도 ;ㅁ;
멀바//
There's something lacking that really disturbs me. The familiar bond which is, according to those around me, rather visceral in nature, seems to be completely absent. I don't feel it. I know how it is supposed to be, and how I should react, so I react accordingly, but it is not a visceral, natural reaction.
I also have another theory which blames Reenen for everything. He fulfills all my desire to be accepted and to be loved. Therefore I don't need anything else usually. His fault for being so good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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