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담따먹기 인간의 비애

그냥 농담인데 뭘 그래???

나도 그렇고 신랑도 그렇고 농담이 대화의 90% 를 이룬다. 심각한 얘기를 하다가도 바로 농담으로 샜다가 또 심각한 얘기로 돌아오기도 아주 잘한다. 그래서 우리 둘 다 전에 사귀던 사람들과 좀 고생을 했는데 예를 들어:

전남친: 우리 얘기좀 해.
양파: 얘기. 얘기. 얘기.
전남친: 우리 관계에 대해서 말이야.
양파: 저기, 그런 중차대한 문제를 그냥 막 해도 되는 거야?
전남친: -_-+
양파: 개인적으로는 말이야, 준비할 시간이 필요할 테니까 미리미리 스케줄을 잡아야 된다고 생각해. 다음 주 화요일 오후 정도로 시간 잡고 우리 그 때까지 열심히 준비하는 거야. 어때?
전남친: 그런 식으로 미루려는 거 다 알아!
양파: 그럼 알아서 그만두던가 ㅡ.ㅡ

어떻게 보면 '농담'이라기 보다 '심각한 것에 관한 알레르기'가 더 정확하다.

인신공격에 가까운 농담을 누가 한다면 바로 되받아 친다. kristine 님의 예처럼 누군가가 나에게 등짝이 넓어서 좋겠다, 하면 난 아마 그렇게 받아칠거다. 넌 그게 작아서 좋겠다. 앉을 때 편하잖아. 정도. 인신공격 좋아하진 않지만 서로 어색하지 않으려면 그게 최고라고 생각한다. 똑같이 인신공격 했고 똑같이 무안하니까 미안하고 어쩌고 할 것 없이 쌤쌤.

동문서답 작전도 쓴다. '넌 왜 집중을 못하니' 하고 놀리면 '지구 온난화 방지를 위해서 우주에 거울을 설치할까 생각중이래' 정도로 대답.


한국 여자분이 우리집에 놀러온 적이 있었다. 저녁을 다 먹고 나서 인사치례 모드로 들어갔다. 아, 초대해 주셔서 너무 감사하고 어쩌고 저쩌고 하는 말이 오 초가 넘어가니까 신랑은 자동 알레르기 모드 돌입했다.
'플레이 스테이션 3이요 +_+'
'에?'
'아니, 너무 감사해서 어떻게 보답할지 모르신다고 말씀하시니까 힌트를 드리.....
'......'
'좀 비싸면 메모리 카드로도 바꿔드릴 수 있는데 -_-'

주말에 오실지 모른다던 시어머니가 안 오셨다.
시엄니: '너희 본지 오래 되서 꼭 가려고 했는데 너희도 바쁜 것 같고, 전화도 안 오고 그래서 뭐 안 갔다.'
신랑: '그럼 미리 말 하지! 주말 내내 불 끄고 숨어 있었잖아.'
시엄니: -_-;;

신랑 직장에서 동료 여자가:
여자: 아무도 나한테 신경 안 써줘 ㅠㅠ
신랑: 아냐, 옆에서 그렇게 계속 불평하면 얼마나 신경쓰이는데 +_+
여자: -_-++++
신랑: 봐, 막 신경쓰여서 뒷골까지 땡겨.

며칠 전에는:

양파: 신랑님. 저기 서재에 약 뿌려야겠다. 자꾸 공구쉑들이 기어나와서 당신 식탁위에 진 치고 있어 -_-+
신랑: 응. 아주 음험한 놈들이야. 케이블 가지고 이동하나봐. 아침에 일어나 보니까 케이블도 식탁에 막 늘려 있더라고.
양파: 못 나가게 서재 입구에 전기 쇼크 장치를 설치해 놓으면 어떨까? 저녁 열한시에 켜두고 아침 일곱시에 해제되도록 -_-+++
신랑: 우우우움.
양파: 그것들이 당신은 안 무서워하는 거 같으니까 내가 설치할게.
신랑: 풍수적으로 그거 안 좋을걸. 집안의 기운을 전기로 끊는게......

농담따먹기 안 하고 말 했으면 '당신 또 어질렀잖아, 안 치우면 죽여버린다' 정도가 될 거다.

'너 그런 것도 제대로 못 하냐'는 다음과 같다:

신랑: (양파가 말아놓은 김밥 보고) 양파야.
양파: 우음?
신랑: 너 아무래도 불량품인 거 같아. 이거 니네 동네에서 해 먹는 거 아니냐?
양파: 좀 오래 전에 출고 되어서 잘 모르겠어요 -_-
신랑: 김밥 말기 유전자 그런 거 없냐구.
양파: 그건 수출용 말고 내수용만;;;
신랑: ㅡ.ㅡ

신랑이 나보다 조금 더 심하긴 하지만 하여튼 둘이서 사는 데에는 별 문제가 없다. 문제는 다른 사람들과 어울리는 데에 있다. kristine 님이 말씀하신 대로 좀 모욕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분위기가 싸해질 때도 있고, 농담 잘못했다가 얼굴 다시 못 보는 경우도 종종 있다 ㅠ.ㅠ 그렇지만 정말 반사적으로 말이 튀어나오는데 어쩌라고.

글  읽고 좀 반성했다. 이것도 '앞으로 좀 더 예민하고 세심한 양파되기' 리스트에 더해야지 ㅠㅠ

좀 심각해지자. 농담따먹기로 인생 보내지 말자. 으헝.

by onion | 2007/04/01 18:12 | Essays | 트랙백 | 핑백(1)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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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마르슬랭 at 2007/04/01 22:00
그냥 가장 편하고 스트레스 덜 받게 살아. 그렇게 할 수 있는 것도 정말 복인 것 같아. 농담에 진지하게 피해의식 느낀다면 진지한 말로 친해져도 말 할때마다 신경쓰이고 불편할 듯..
Commented by 검은머리요다 at 2007/04/01 23:13
오~ 서로 잘 어울리세요.
저는 양파님의 직설적이고 하고 싶은 말은 할수 있는 성격과 기술을 본받아야 겠어요.
누가 저보고 '넌 앉은키가 참 크다' 그러면 바로 화장실로 직행하지 싶네요..
Commented by 가하 at 2007/04/02 00:46
농담이라는게 참. 저도 언제나 농담과 유머를 추구하는 성격이라, 사람들이 저에게도 농담을 잘 걸어요. 근데 다른건 좀 심하다 싶은것도 아무렇지도 않게 웃는데, 가장 흔한 외모 비하 농담이 나오면 눈물이 찔끔. 민망하죠. 눈물이 맺힌채로 아하하 미안하다고 사과하면 분위기 더 난감. 우짜쓰까나. --;
Commented by onion at 2007/04/02 01:25
마르슬랭// 좀 미움받아서 문제야 ㅠㅠ
검은머리요다// 미움받는다니까요. -_-a
글쎄 누가 저에게 '앉은키가 참 크다'라고 한다면 아마도 - 말 하기 싫을땐 그냥 아무거나 던져버리고 (남자한테 잘 통함. 계속 폭력으로 교육시키면 그만 둠. 이 때 귀엽게 때리면 안 됨. 조낸 패야함.) 아니면 '난 하나라도 잘났는데 넌 잘난게 머 있냐' 해도 될 터이고 별로 친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면 잘 모르는 사람한테 그딴 소리 지껄이라고 집에서 가르치더냐 버럭 해도...... 뭐 전 월화수목금토일 매일 다른 공격태세를 취하려 노력합니다마는.
가하// 저도 외모에 참 민감했던 것 같은데 남자들하고 주로 어울려서 그런지, 아니면 한국 사람을 잘 못 만나게 되면서 외모에 관한 농담은 못 들어서 그런지 요즘에는 무뎌졌어요.
그러고 보면 특히 한국 남자들 정말 고소당할 만한 농담 많이 해요. 여자한테 살 쪘다느니, 다이어트 해야겠다느니, 아니면 성형 견적이 어쩌고 저쩌고 몇 번 농담했다면 변호사비로 파산할걸요. 간 크게 말 하는 사람 몇 번 만났다는 -_-a
Commented by 소마 at 2007/04/02 03:18
호호홋~ 만담이 인생의 낙인 사람입니다.
그래서 두 분 대화 읽으면 무지 즐거워요. ^^
덧붙여 나도 얼른 그런 스킬을 터득해야지! 라고 불끈하기도;
Commented by kristine at 2007/04/02 08:25
두분 정말 천생연분ㅇ십니다.
Commented by 하늘꽃 at 2007/04/02 09:08
그렇게 돌려말할 수 있는것도 재주예요. 농담식으로 돌려말하는거. 저는 왠지 부럽네요. 진지한 것도 좋지만 농담으로 말을 톡톡 주고받는 것도 정말 부러운 재능이에요.
Commented by kristine at 2007/04/02 09:42
양파님 질문하나 해도 될까요? 이런 질문 하는 것이 글과 관련이 없는 것은 알지만 요아네스버그에서 서울까지 가는 ㅂ행기는 직항노선은 없는듯 한데 어디어디를 거쳐서 한국으로 오나요?유럽을 통해서 아니면 설마 호주까지 가서는 아닐것이고... 그리고 시간대가 유럽이랑 같나요?
Commented by SvaraDeva at 2007/04/02 11:27
와 너무 재미있으세요. 링크신고합니다.
Commented by onion at 2007/04/02 18:53
소마// 음. 신랑이 엉뚱해서 반격방법을 고심해서 연구하다보니까...
kristine :// 바퀴벌레도 짝이 있다고 누가 그랬....-_-a
하늘꽃// 네 뭐, 돌려 말하는 것까지는 좋은데 아직도 전 김밥을 잘 못 말고 신랑은 아직도 잘 어지르니까 도움은 별로 안 되는 것 같죠?
kristine// 네, 보통 홍콩/싱가포르/콸라룸푸르 혹은 두바이를 거쳐서 갑니다. 시간대는 그리니치 +2 입니다 :)
SvaraDeva// 반갑습니다 =)
Commented by 시리오르 at 2007/04/02 21:21
아놔~이분들은 아직도 신혼이시군요^ㅠ^//저정도면 개그프로그렘 나가셔서 만담부부로 해도 될것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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